2024년 11월 개봉한 현문섭 감독의 장편 데뷔작 '사흘'은 구마 의식 도중 발생한 비극적 사건과 그 후 3일간의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박신양의 진정성 있는 연기와 신선한 장르적 조합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과 구마 의식이 교차하는 독특한 서사
영화는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소미(이레 분)가 구마 의식 도중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흉부외과 의사인 아버지 차승도(박신양 분)는 직접 집도했던 딸의 수술이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의심 속에서 더욱 큰 고통을 겪는다. 이때 구마 의식을 진행했던 반해신 신부(이민기 분)가 소미의 시신에서 악마의 존재를 감지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전통적인 오컬트 호러 장르에 깊은 부성애를 결합시킨 독특한 시도다. 이는 단순한 공포 영화를 넘어서 인간의 감정과 사랑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박신양이 연기한 아버지 차승도의 절절한 감정선은 관객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뛰어난 연기 앙상블이 만들어낸 깊이 있는 드라마
베테랑 배우 박신양의 안정적인 연기는 물론, 딸 소미 역을 맡은 이레의 놀라운 연기력이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특히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부녀 관계의 케미스트리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안치실 관리인 철기 역의 김기천까지 가세하여 탄탄한 연기 앙상블을 완성했다.
장르적 실험과 새로운 도전
일부에서는 오컬트와 휴먼 드라마의 결합이 장르적 특성을 희석시켰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을 만하다. 전통적인 공포 영화의 문법을 벗어나 인간의 감정과 공포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점은 높이 살만하다.
특히 '뮈예딘'이라는 러시아어 단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서사와, 예수님의 부활을 차용한 3일이라는 시간적 설정은 작품에 깊이를 더해준다. 구마 의식을 통해 드러나는 종교적 요소와 현대 의학이 대비되는 설정 또한 흥미롭다.
새로운 한국 공포 영화의 가능성
현문섭 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사흘'은 완성도 높은 연출력을 보여준다. 특히 공포 영화의 클리셰를 벗어나 인간의 감정에 집중한 점은 신선하다. 비록 전통적인 공포 영화나 오컬트 요소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줄 수 있으나,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사흘'은 공포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에 휴먼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수작이다. 박신양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감독의 과감한 시도가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한국 공포 영화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